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는 ‘세상을 바꾸는 벽’이 세워집니다. 이곳에 남겨진 질문과 의견들이 서로 연결되고 교차되면서, 누구도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을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생명에도 위계는 없다’, ‘삶이 돈보다 중요하다 배웠는데 너무 쉽게 죽임 당하는 비인간’, ‘인간이 아니라서 차별받는 것이 당연시 되는 구조’ 등 참여자들께서 남겨주신 의견을 읽으며 계엄 이전에도 계엄 같은 삶을 살며 고통 받았던 생명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린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의 기후생태위기를 경유하며 비인간 존재들과의 새로운 관계맺기가 중요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생크추어리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생크추어리는 주로 학대받거나 구조된 동물들이 인간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새벽이생추어리’, ‘달 뜨는 보금자리’,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등 생크추어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중 ‘새벽이생추어리’, ‘달 뜨는 보금자리’ 사례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상상해보려고 합니다.

‘새벽이생추어리’는 경기도 화성 돼지농장에서 구조된 돼지들(새벽, 잔디)이, ‘달 뜨는 보금자리’는 도살 위기에서 구조된 5명의 소(머위, 메밀, 부들, 엉이, 창포)가 여생을 보내는 곳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돼지의 수명은 9~15년 정도이지만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는 생후 6개월 정도가 되면 살해 당해 ‘고기’가 됩니다. 자연 상태에서 소는 15~20년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홀스타인 종 소는 평생을 강제 임신 상태에 있다가 4년 후에는 살해 당해 ‘식용 분쇄육’으로 팔립니다. 더 오랫동안 삶을 누릴 수 있는 생명이, 인간 동물에게 이용 당하기 위해 살해 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생크추어리의 동물들은 공장식 축산 동물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면서, 그들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새벽, 잔디, 머위, 메일, 부들, 엉이, 창포의 하루하루는 돼지나 소도 늙어서 죽을 수 있었던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저항’인 것입니다. 생크추어리 동물들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편리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비인간 존재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비인간 존재들이 대등하게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종이 다른 종을 향해 저지르는 압도적인 폭력과 범죄를, 더 넓은 범위에서도 멈출 수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 등 인간이 저지르는 폭력을 멈추는 일로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는 시작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편 ‘새벽이생추어리’와 ‘달 뜨는 보금자리’에서 머무는 다양한 존재들은 서로를 돌보며 살아 갑니다. 우선 (자원)활동가들은 생크추어리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삶을 이어가도록 돕습니다. 이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동물들의 자연적인 습성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환경을 조성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자원) 활동가들은 평화롭게 삶을 이어가는 동물 존재들과 함께 하며며 평화, 위안, 배움 등을 얻습니다. 반려 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분들은 쉽게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생크추어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망들은 인간, 비인간 동물 모두에게 피난처가 됩니다. 인간, 비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는 상호 돌봄을 작동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끝으로 ‘달 뜨는 보금자리’는 강원도 인제에서 한국 최초의 ‘비건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 봉사자 등 관계 인구가 늘면서 지역의 매력과 활력을 높이는 ‘로컬 브랜딩’ 사업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종평등적이면서 상호돌봄의 문화가 지역 사회와 만나 관계망이 확장된 사례입니다. 이처럼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는 개인들의 관계를 넘어 마을-지역 차원에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다.

‘새벽이생추어리’, ‘달 뜨는 보금자리’를 통해 인간이 저지르는 종차별적 폭력을 인식하고 멈추려고 애쓰며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상호돌봄의 관계망을 확장해나가면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에 따라 비인간 존재의 고통을 외면하고 착취해왔습니다. 다른 동물들을 가두고 죽여 ‘고기’로 이용하는 공장식 축산 동물 외에도, 동물원, 아쿠아리움에서 사는 전시 동물이나 실험 동물의 고통도, 공항이나 케이블카 등의 건설을 위해서 원래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의 고통도 외면해왔습니다. 그 결과 브레이크 없는 성장과 개발, 종차별주의는 기후생태위기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의 공존을 꿈꾸는 인식 전환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착취를 거부하고 공존을 실천하는 삶의 태도로서의 비거니즘은 그 바탕이 될 수 있겠지요.

한편 난개발을 막고 비인간의 삶의 터전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신공항 건설, 4대강 보 건설, 케이블카 설치 등 난개발로 수 많은 생명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행동을 벌이는 이들과 함께 연대합시다. 또한 공장식 축산과 살처분 폐지, 동물 학대 축제 중단 등을 요구해야 합니다. 동물을 민법상 물건(유체물)이 아니라 ‘살아있고 자각있는 존재’로 제고하고 강아지 공장과 펫숍을 없애거나 획기적으로 줄여서 유기와 학대, 죽음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동물이나 자연물에 (생태)법인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국내 최초 생태법인을 지정하는 활동도 활발한데요, 서포터즈 등 다양한 활동으로 연대할 수 있습니다.

생태헌법 개헌과 법제도의 마련도 필요합니다. 에콰도르는 2008년 개헌을 통해 ‘존재 자체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권리’, ‘(훼손됐을 경우) 원상 회복될 권리’, ‘모든 개인과 공동체는 당국에 자연의 권리를 집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도 어머니 지국의 권리에 관한 법률에서 ‘생명에 대한 권리’, ‘생명의 다양성에 대한 권리’, ‘물에 대한 권리’, ‘깨끗한 공기에 대한 권리’, ‘평형을 유지할 권리’, ‘복원의 권리’, ‘오염되지 아니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들은 다종 정의와 돌봄의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탄핵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면에 정치 제도와 연계하여 생명권, 동물권 등을 포함하는 개헌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각자 할 수 있는 힘껏 동물 착취를 거부하고 공존을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면 시스템도 바뀐다고 믿습니다. 채식 기반 식사를 확대하고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생활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공공기관에서 먼저 채식 급식을 기본으로 제공할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춰지면 더 많은 이들이 비거니즘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동물원이나 대형 수족관에서의 동물권리 침해를 감시하고 이용하지 않는 것, 생크추어리의 활동을 돕는 일도 비거니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나 새 등 도시에서 살

아가고 있는 동물들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고 공존의 방법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길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한 골목의 약속’을 만들거나 ‘새로운 공공 시설을 만들 때 동물들의 삶, 습성을 반영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한 인간-비인간 동물-자연의 공생 관계 배움터도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한강 작가의 질문을 떠올립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난 해치지 않는 인간이 되겠어, 공생하는 인간이 되겠어. 이렇게 마음 먹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무엇이 폭력인지 고민하는 당신이, 좀 더 고민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편 기후시계가 4년 166일(2월 6일 기준)을 가리키고 있는데요 이 시간이 지나면 더 극심한 기후재난이 모두의 삶을 뒤흔들 것입니다. 인간중심주의, 추출주의, 가부장 자본주의, 성장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다른 정치 세력이 등장하더라도, 기후생태위기를 만들어낸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다시 끔찍한 재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 댐, 숲, 마을, 이곳에 깃든 생명들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고 공생을 상상해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함께 배제와 차별을 밀어내고 연민과 사랑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싶습니다. 적어도 종차별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다정한 당신과 함께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끝]